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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잡동 사니/옛날 철도 사진들12

1987년 충북선 침수 1987년 7월 22일 국지성 집중호우로 금강 하천 범람으로 인해 청원군 강내 면적이 80ha 수해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청원군 구간 지나는 충북선 선로까지 침수피해를 입었다. 확대하고 싶으시면 이미지를 클릭하시고 좌측 위에 원본 보기 아이콘을 클릭하세요. (※ PC에서만 해당) 하천에 강물이 불어나 마치 호수처럼 변해버려 비가 며칠씩 내려 보통 하천이었다가 갑작스럽게 급속도로 불어나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천 그 옆에 충북선 선로까지 침수피해를 입어 통일호 열차가 침수 피해 지역 앞에 멈추자 오고 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당시 선로 침수피해 지점 앞에 있던 통일호 열차는 천안, 조치원방면인지 제천방면인지 알 수 없다. 원본을 확대하고 싶으시면 이미지를 클릭하시고 좌측 위에 원본 보기.. 2007. 8. 22.
1973년 존재하지 않은 간이역 - 충북선 미호역 어느 철도 카페에서 충북선 미호역이라는 정보가 있었는데 별로 흔적과 존재조차 없는 정보다. 하지만 어느 날 관공서 공익근무 때 청원군 사진전 책에서 사진 보고 있는 중 미호역 폴 사인 사진이 발견돼 확실히 미호역이 존재했었다. 1973년 촬영한 사진이었고 조치원역 기점이 대략 7.6Km 지점이다. 그 당시 충북선 단선 시절 처음부터 무배치간이역으로 취급했었고 역명판에 다음역 거리도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왼쪽 방향(정봉역 방면)은 청주 방면이고 오른쪽 방향(오송역 방면)은 조치원 방면이다. 청주방면 다음역은 정봉역 있었는데 거기도 무배치간이역을 취급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75년쯤 복선화 공사로 미호역과 정봉역은 폐역과 동시에 사라져 지금은 미호역은 거의 흔적도 없고 존재마저 없는 옛날 간이역이다. 사.. 2007. 8. 8.
1993년 구포역 열차전복 사고 1993년 3월 28일 경부선 하행선 구포역에 진입 중이던 7116호 디젤기관차 부산행 무궁화호가 지반침하로 3m 주저앉고 전복 객차 4량이 탈선했다. 사망자 78명, 부상자 140여 명에 최악의 대참사가 발생했다. 사고원인은 구포역 부근 한국전력의 지하케이블 터널 공사 중이 었는데 당시 삼성종합건설이 안전대비를 대해 무시한 채 발파공사로 지반이 약화로 밝혀졌다. (월간 신동아 1993년 5월 절반 인용) 지반이 3m 주저앉은 사고가 난 7116호 디젤기관차 모습이다. 장폐단 동체 부분이 태웠고 두 기관사는 무사했다고 한다. 지금은 폐차한 지 오래되었다. 왼쪽은 발전차가 골목길로 옮겼고 오른쪽은 찌그러진 객차와 멀쩡한 객차 선로 옆으로 옮겼다. 특히 찌그러진 객차 안에 있던 승객들이 피해가 더욱 컸다. .. 2007. 4. 19.
1984년 지역전화번호와 철도광고 1984년 지역 번호다. 지역 번호 통합되기 전 매우 한참 일이지만, 그때는 'D.D.D(Distance direct dialing)'라는 지역 번호가 있었다. D.D.D 되기 전 지역 상호 간에 연결 통화되지 않아 불편한 일이 있었다. 85년 이후 모든 통화가 가능해졌지만, 나는 그땐 태어나기 전이었다. 그 시절 사람들이 지역 번호 찾는랴 찾는랴 힘들었기도 하고 특히 어르신들이 찾느라 짜증을 내기도 했다. 지금은 아주 편해졌지만 그대로 유지될 경우 평생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다. 84년 지역번호 일부 03XXX 번호 있는데 그때는 강원도 산간지역에 전화시설이 안 돼 그 지역 번호 신설된 것 같다. 제주도 역시 지역 번호 통합되기 전이지만 이후 가장 먼저 통합했다. 84년 산간지역 신설로 추정된 지역 번호.. 2007. 2. 17.
1962년 동해북부선 개통식 1962년 33년 만에 동해북부선 개통했다. 1929년 공사들어간 이후 하나둘씩 일부 구간 개통해 운행했었지만, 한국전쟁 발발과 남북분단 후 최종 완공도 못 보고 말았다. 그 후 1960년대쯤 다시 공사에 들어가고 1961년에는 일부 구간을 개통했고 1962년에는 마침내 동해북부선 공사 마치고 개통했다. 1961년 5월 8일 일부 구간 개통 후. 1962년 11월 6일 개통식에 참석한 박정희 의장이 망치 박는 모습. 하지만 원래 동해북부선 원산 - 양양 구간인데 사실은 원산 - 북평(동해) 최종구간이었다. 그러나 남북분단 이후 간성 - 북평(동해) 최종구간으로 그치고 말았다. 1961년 북평 - 옥계 일부구간 개통했고 1962년에는 경포대역까지 개통했다. 그 이후 계속 연장공사 추진 중 이었지만 1979.. 2007. 2. 13.
1963년 서울교외선 개통식 1963년 8월 23일 서울 - 의정부 간의 서울교외선 개통했다. 당시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참석했다. 통근열차는 니가타 동차의 모습, 그렇지만 지난번 포스트 작성한 1961년 능의선 개통식이랑 별반 차이가 없고 아무튼 서울 - 의정부 간 신설노선 한 셈이다. 사진은 2007. 2. 2. 촬영, 사진 자료 출처는 대한민국 정부 사진기록입니다. 2007. 2. 10.
1962년 낙동강철교 개통식 1962년 12월 24일 경전선 낙동강철교 공사를 마치고 개통했다. 하지만 이 낙동강철교는 한국전쟁을 휴전하고 끝난 후 복구공사였다. 원래 1940년 4월 1차 준공했지만, 상부구조는 2차대전 때 공사 중단되었다. 그 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다시 공사재개 들었갔지만, 한국전쟁 때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여 낙동강철교를 폭파했다. 전쟁을 끝난 후 끊어진 낙동강철교 복구공사 하고 이제서야 개통했다. 사진은 2007. 2. 2. 촬영, 사진 자료 출처는 대한민국 정부 사진기록입니다. 2007. 2. 6.
1963년 안양역 열차사고 1963년 2월 14일 안양역에서 과속으로 추정되는 재건호 열차가 탈선사고 났다. 재건호 열차 안에 있던 승객들은 많은부상자를 냈다. 아무래도 지나치게 속력을 높이자 대차(열차 바퀴(?)) 안전속도 초과해 내구력을 견디지 못하고 사고가 난 것이 추정된다. 사진은 2007. 2. 2. 촬영, 사진 자료 출처는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입니다. 2007. 2. 5.
1961년 능의선 개통식 1961년 7월 10일 능곡 - 의정부 간 공사 마치고 능의선 개통했다. 당시 윤보선 대통령 비롯해 박정희 의장과 여러 군 장교들이 개통식 참석했다. 이 개통식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많은 군부들이 거의 참석했는데 물론 많은 일반시민도 참여했다. 사실.. 이 능의선은 서울교외선의 후신이다. 사진은 2007. 2. 2. 촬영, 사진 자료 출처는 대한민국 정부 사진기록입니다. 2007. 2. 3.
1969년 천안역 열차사고 1969년 1월 31일 천안역에서 열차 신호 이상이나 그 외 추정되는 통일호 객차끼리 충돌사고다. 객차 안에 있던 많은 승객이 사상자가 발생했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병원에 찾아가 부상자들에게 위로했다. 사진은 2007. 1. 25. 촬영, 사진 자료 출처는 대한민국 정부 사진기록입니다. 2007. 1. 27.
1988년 금정역과 부곡역의 모습 첫 번째 사진은 1988년 금정역이다. 당시 안산선 개통으로 이 역을 환승역과 시 종착역으로 완공했다. 그 후 과천선 개통해 정차역으로 변했지만 1994년 4호선과 과천선 입체 터널식으로 연결하자 자연스럽게 4호선에 편입했다. 두 번째 사진은 1988년 (구) 부곡역이다. 그때 당시 철거 전이지만 게다가 전철은 없었고 순수한 기차역이었다. (그때당시 전철역인지 잘 모르겠음.) 그 후 신역사 완공 여객열차 폐지하고 전철역만 취급. 지금은 의왕역으로 변경했다. 사진은 2006. 8. 1. 촬영, 사진 자료 출처는 시흥시 사진전입니다. 2006. 8. 2.
1965년 경인선 복선 개통 1965년 9월 18일 제66주년 철도의 날이 맞이하여 경인선 복선 개통했다. 1960년대 단선 시절 경인선 이용 승객이 급증하자 운행시간이 해소하기 위해 이렇게 개통하였다. 사진은 2006. 8. 1. 촬영, 사진 자료 출처는 대한민국 정부 사진기록입니다. 2006. 8. 2.